허풍과 허세.
녹이 슨 수도꼭지를 돌려 더러운 물로 세수를 한다. 그리곤 꽤 오래 써서 다 헤지고 닳은 칫솔을 찾아 정성스레 이빨을 닦는다. 사흘 전 즈음 먹고 남겨둔 치킨이 생각나서 찾는다. 고장 난 전자레인지에 넣는다. 작동할 리가 없다. 당연히 데워지지도 않는다. 그럴 거란 걸 알고 있지만 느긋하게 3분 10초를 기다린 뒤 꺼내 먹는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하고 기도를 올린다. 벌레가 나온다. 개의치 않고 아무 곳에나 뱉어 낸다. 언제 땄는지 알 수 없어 미지근해진 콜라를 집어 든다. 김은 빠지고 적당히 달짝지근해져서 딱 마시기 좋다. 그리고 빈 깡통은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다. 푹 꺼진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켠다. 검정색과 흰색의 점들이 쉴 새 없이 ‘지-지-직, 지-지-직’ 거린다. 멍하니 바라보다가 채널을 돌린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나온다.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른다. ‘역시 내가 훨씬 더 잘 부르잖아?’ 그리고 녹슬지 않은 자기 실력에 감탄하며 크게 박수친다. 그러자 금이 간 천장에서 무언가 후두두둑 떨어진다.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박수친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보는데 무언가가 발가락을 조금씩 갉아 먹는다. 긁기도 귀찮아진 무좀을 시원스럽게 긁어준다. 고맙다고 인사를 전하려고 봤더니 쥐다. 쥐가 무슨 소리를 내는 것 같지만 분명 반갑다는 인사일 터이니 나도 반갑다고 미소 지으며 쓰다듬는다. 그리고 잠이 든다. 소파에 기대어 텔레비전을 켜둔 채로 잠이 든다. 꿈을 꾼다. 꿈을 꾸면서도 이건 꿈이라는 걸 안다.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보나마나 일확천금하는 행복한 꿈이었을 거다. 눈물을 훔친다. 녹슨 쇠 냄새가 나는 눈물이었다. 왜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꿈이 너무 즐거워서 흘리는 감격의 눈물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뜬다. 습관처럼 눈물을 닦고 왼쪽 가슴을 열어본다. 뛰지 않는다. 그리고 머리통을 열어본다.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공간이다. 텅 빈 곳을 청소한다. 정성껏 청소한다. 녹슨 쇠 냄새가 사라질 때까지 깨끗하게 청소한다.
일주일 전 구입한 최신식 휴대전화에서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가 울린다.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은 뒤, 전화를 받는다. 사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다. 전화기를 멀리한 뒤 ‘에―헴’하고 다시 목을 푼다. 짧은 통화를 마친 뒤 빗질을 한다. 옷장을 열어젖힌다. 고작 두 벌 뿐이지만 나름대로 고심을 한다. 이태리식 고급 슈트를 입고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선 뒤 넥타이를 맨다. 여간해서 길이 맞추기가 힘든 것이 아니지만 오늘은 단 한 번 만에 제대로 매었다. 치킨 양념이 낀 치아를 드러내며 히죽거린다. 다려지지 않은 소매를 억지로 고친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집을 나선다. 아니, 폐허가 된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근처 고급아파트 단지를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그 곳에 얌전히 모셔져 있는 BMW의 문을 연다. 아직 할부기간도 채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듯 조심스럽다. 약속 시간까지 넉넉하기에 자랑스러운 애마의 우아한 자태를 뽐내듯 여유롭게 드라이브를 만끽한다. 차에서 내리기 전 관능적인 도시남자를 대표한다는 향수를 뿌린다. 이것만은 절대 잊지 않는다. 문을 열고 들어가며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좀 늦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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