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춘기는 역마살이 가득한 시기였다. 여기저기 집을 옮겨 다녔을 뿐만 아니라 학업도 예체능과 인문을 다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직업은 군인이셨다. 직업군인의 자녀들이 그렇듯 난 아버지가 군인을 그만두실 때까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버지의 전출명령이 떨어질 때마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다녔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면서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어머니의 영향인지 아버지는 14년을 몸담으셨던 해군에서 떠나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신학교에 입학하셨던 것이다. 아버지의 선택은 내게 2가지의 변화를 가져왔다. 첫 번째는 잦은 이사를 걱정하지 않고 한곳에서 정착할 수 있다는 마음의 안정과 두 번째는 아버지의 늦은 공부 뒷바라지 때문에 생긴 어머니의 빈자리였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난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어울려 지내는 것으로 채워나갔고 그 결과 운동이 좋아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는 흔히 ‘운동부’의 육상선수가 되었다. 중학교를 그렇게 특기전형으로 간 나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닥쳤는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신체발육의 한계였다. 크기만 할 줄 알았던 키는 그렇게 멈춰버렸고, 난 더 이상 환영받는 신체조건을 가진 육상선수가 아니게 된 것이다. 고심 끝에 난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1년을 힘겹게 적응해 나갈 때 아버지께서는 신학교를 졸업하시게 되었고 난 직장이 바뀌신 아버지를 따라경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막 시작한 공부와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은 날 너무도 힘겹게 했다. 한창 마음속의 기복이 심했던 중2때 난 결국 경주에서의 학업을 그만둔 채 1년을 쉬게 되었다. 복학생이 된 것이다. 뭔가 잘못되어 가는 느낌이 많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쉬는 동안에 책도 많이 읽게 되었고 생각들도 많이 정리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기에 자칫 내가 나를 괴롭힐 수 도 있었던 사춘기를 나를 갈무리 하는 시간으로 쓸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기 위한 시간들을 보내고 난 아버지를 따라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대구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 대부분의 친구들과 같이 학원과 학교에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고 진학문제와 학업문제로 고민하는 평범한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친구들의 뒤만 따라가기만 하던 인문계열의 공부가 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에 대학진학을 코앞에 두고 예능계열 무실기 전형이 있던 지금의 이곳에 원서를 갑작스럽게 내게 되었다. 그렇게 또 다시 인문계열에서 예능계열로 내가 원하는 지금 이길 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의 날 뒤돌아 볼 때면 항상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해진다. 쉬고 싶을 때 쉬게 해주시고 다시 도전하고 싶을 때 그 길을 허락해 주셨으니 말이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도 많이 되셨을 테고 부모님들께서 기대하시고 바라는 것들도 많았을 텐데 그저 하고 싶은 것들만 원하는 아들에게 응원과 지원을 아끼시지 않는 나의 부모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겨주시는 그분들이 있었기에 힘겹기만 했던 사춘기가 지금의 나를 만드는 큰 양분이 되었다.

Posted by c.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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